당신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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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자정이 지난 시간에 집 전화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응급실에서 당직하는 레지던트 선생으로부터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가 있긴 하지만 평소와는 내용이 좀 달랐다. 30대 후반의 남자가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 절단되어 응급실로 왔는데, 어떻게 다쳤는지 횡설수설 한다는 것이었다. 엄지 손가락이 손바닥과 접하는 부위에서 완전히 절단되었는데 절단면이 깨끗하지가 않았고, 엄지 손가락의 관절을 굽히는 인대가 팔꿈치 근처에서 뽑혀 나왔다. 물론 엄지 손가락의 뼈도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절단된 신체부위는 가능하면 빨리 재접합 수술을 하는 것이 수술 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새벽이지만 응급수술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자세한 환자의 병력을 묻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절단된 환자의 엄지 손가락은 환자 자신의 입으로 물어 뜯었다는 것이 아닌가? 절단된 부의가 깨끗하지 않고 자해를 한 경우에는 재접합 수술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절단된 신체 부위의 재접합 수술을 위해서는 환자의 건강상태가 장시간의 전신 마취를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수술 후에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 연결한 혈관이 막히는지 계속해서 감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환자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인쇄소 절단기나 칼에 절단된 경우에는 절단면을 생리 식염수로 많이 씻어 주고 예방적인 항생제 투여를 하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개나 사람에게 물린 상처는 금방 봉합을 해서는 안된다. 재접합 수술 대신 상처 봉합 수술만 하고 바로 정신과에서 입원 치료를 하였다. 한참 지나서 말끔한 신사가 성형외과 외래를 방문하였다. 바로 그 환자였다. 응급실에서 술에 취해 있던 일그러진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겸연쩍어 하면서 그때는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싱긋이 웃으면서 이야기 하였다. 최근에 사업 실패를 하고 늦게 장가를 가서 얻은 첫 딸의 엄지 손가락이 태어날 때부터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고민으로 계속해서 술을 마시게 되고, 그날따라 과음 끝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였다. 정신과에서는 [단기 정신병적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에서 한달 정도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일단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아무런 증상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손의 선천성 기형을 가진 [딸]에 대한 죄책감과 사업 실패로 인한 무능한 아버지라는 죄의식 같은 것들이 환자의 잠재 의식에 쌓여 환자 자신의 손을 딸의 손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다. 환자는 평소에 있던 엄지 손가락이 없어져 느끼는 불편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문고리르 잡는다든지, 전화기를 들 때, 운전도 불편해서 못하겠고, 심지어 숟가락을 드는 일 조차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정신과와 상의한 다음 엄지 손가락 재건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곧 바로 수술을 시행하였다. 일반적으로 엄지 손가락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엄지발가락이나 두번째 발가락을 옮겨 가는데, 대부분 수술 후 기능적이나 미용적인 면에서 결과가 우수한 엄지 발가락을 많이 이용한다. 그렇지만 가능한 보행이나 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엄지 발가락의 중요한 부분을 남기면서 수술을 해야하는 수술기법이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유교적 관념으로 신체의 일부를 만들기 위해 신체의 다른 부위를 희생하는데 대하여 많은 장벽이 있다. 즉 [손가락만 병신이면 되지 발가락까지 병신이 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수술 후 발은 항상 양말로 가려지고, 일반적인 보행이나 운동에 지장이 없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다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수술에 대한 편견과 이해부족으로 수술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에 엄지 손가락을 재건하는 수술이 의료 보험 급여로 되어 환자의 수술비 부담이 많이 줄어 들었다.설이 지난 다음날, 외래를 다시 방문한 환자는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많이 걸어 다니지만 큰 불편함은 없다고 하였다. 새로 생긴 엄지 손가락으로 자연스럽게 악수도 하고, 운전도 하게 되어 매우 만족하였다. 몇 개월 후 있을 딸의 수술도 잘 부탁한다고 하면서 자기 회사의 자동차로 차를 바꿀 생각이 없느냐고 넌지시 묻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관리자 1997.02.211964년 미국 최초로 완전 절단된 엄지손가락을 접합하였고, 1999년에는 프랑스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수부이식수술 (뇌사자의 팔을 기증받아 팔이 없는 사람에게 옮기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수부외과 및 미세수술 전문병원인 클라이넛연구소 (Kleinert's Hand & Microsurgery Institute) - 한국 최초의 정식 ‘임상교수(Clinical Fellow, 이하 CF로 약자표기)로 1년간(1999년 7월 ? 2000년 6월) 일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합격 통지서를 98년 가을에 받았다. 손가락 접합수술과 응급수술로 밤을 지새면서도 그렇게 꿈꾸던 곳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기쁨도 잠깐, 합격 통지서와 같이 보내온 것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필수논문 리스트에는 1,000 여편 이상의 수부외과와 미세수술에 대한 논문 제목들이 있었다. 게다가 비록 10년 가까이 영어회화 공부를 개인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영어권에서 의학공부를 한 것도, 수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영어로 다 해결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도저히 자신이 없어 주임교수와 상의한 끝에 2개월 미리 출국하였다. 켄터키주 루이빌시 다운타운 , 여러 개의 병원건물이 구름다리로 모두 연결되어 의사나 간호사도 많고, 동양인도 많지만 한국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병원에 있을 때는 완전히 낙도에 고립된 느낌이었다. 너무나 풍부한 일회용 의료물품과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비, 책에 나오는 거의 모든 종류의 수부외과 수술(관절염, 신경압박증후군, 손목통증, 상완신경총 손상, 선천성 수부기형 등등)과 너무나도 많은 환자들로 입이 크게 벌려질 정도였다. 세계 최고의 손수술 및 미세수술 센터로 자부하는 이 병원은 14명의 저명한 교수들이 서로 경쟁하고 격려하면서, 낮에는 예정된 수술로, 밤에는 응급수술로 수술실에 불이 꺼지질 않았다. 미국 최초로 수부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Dr. Breidenbach는 토요일에도 예정된 수술을 10개씩이나 올리기도 하였다. 외래시간엔 교수당 40-100 명의 환자를 7-8개의 방에서 동시에 나누어 보는데, 환자는 가만히 앉아 있고 CF, 교수, 물리치료사, 보조기 담당자, 간호사, 산재담당자, 카운셀러, 방사선 기사들이 돌아가면서 환자의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의논하며 환자 한명, 한명에 최선을 다하였다. 임상교수는 미국 본토출신 13명, 세계각국에서 14명 등 모두 27명이 1-2년 스케줄로 교수들과 함께 일을 하는데, 미국 CF들은 성형외과나 정형외과를 마친 후 수부외과 전문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혹은 좀 더 나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1-2년간의 과정을 거치고, 국제 CF들은 엄격한 기준에 의해 아시아, 유럽, 남미 등 세계 각국에서 선발된 이미 임상 경험이 있는 전문의들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6시 30분엔 교수들과 CF 혹은 외부 초청 강연자들이 준비한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심도 깊은 한 시간의 세미나를 하였다. 약 30분간의 회진 후 아침 8시엔 외래와 수술이 동시에 시작되어 환자에게 주는 불편을 최소화 하면서 근무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였다. 가끔 밤새도록 한 응급수술 때문에 새벽 세미나에 빠지는 것을 제외하고 79세의 Dr. Kleinert부터 교수, 모든 CF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 병원과 대학의 시스템이 얼마나 의사 본위로 되어있고, 교수와 전공의들이 공부를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이 되었다. 한 명의 교수와 국내 , 국제 CF 한 명씩 3명이 한조가 되어 항상 함께 움직이는데 매달 팀이 바뀌게 된다. 외래에서는 CF가 가장 먼저 환자의 병력을 문진하고 이학적 검사를 통하여 진단명과 치료계획까지 꼼꼼히 기술해 놓으면 교수가 환자를 보면서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한다. 수술실에서는 모든 수술의 시작과 끝을 CF에게 맡겨 교수들이 도와주는 형태로 진행하고, 응급수술은 CF에게 좀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된다. 당직은 평균 주중 한번, 주말 한번으로 한달에 8-9번 정도의 당직을 서게 되는데,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다음 날 외래시간엔 환자와 문진하면서 졸기도 하였다. 가까이는 자동차로 4-5시간 거리에서, 멀리는 헬기로 4-5 시간이나 걸려 다른 주의 손이나 팔이 절단된 환자들이 이송되어 왔다. 어떨 땐 인대 손상 같은 경미한 외상도 멀리서 수부외과 전문병원으로 보내는 의료구조에 놀라기도 하였다. 바쁜 날엔 3-4개의 수술방에서 교수 한명과 CF 3-4명이 밤새도록 응급환자를 처리해도 그 다음 날 당직 팀에게 환자를 인계할 정도였다. 처음엔 이 사람들의 일에 대한 열정과 정성이 너무 심하다 싶은 느낌이 들 었으나 차차 이것이 진정한 '프로의 세계'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당직 교수들은 자신의 당직 날에는 병원에서 CF들과 같이 수술을 하면서 논문 정리와 수술 기록지 점검으로 밤을 지새고, 우리 같으면 1-2년차 레지던트가 대충하고 치울 사소한 손가락 끝 손상에도 수술전 많은 토론을 유도하였다. 환자의 모든 기록 (신환의뢰서, 입원요약지, 수술기록지, 응급환자 보고서, 퇴원요약지)은 항상 들고 다니는 전화기(dictaphone)에 녹음하여 일의 능률을 올린다. 미국이나 영어권 CF들이 수술기록지 하나 구술하는데 2-3분이면 족할 일을 필자는 직접 메모지에 영어 문장을 만들어 다시 녹음하니 30분에서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이 더 걸렸다. 교수의 수술날과 당직날은 보통 겹쳐 당직날 평균 15-20개의 수술기록지와 응급환자 보고서를 녹음해야 하는데 당직후 퇴근하여 집에서 이를 위해 보내야 하는 시간은 어마어마 하였다. 수 부외과나 미세수술 술기로 따지면 적지 않은 경험과 논문을 가지고 있지만 초반기엔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못해 제 1번 당직때에는 병실 입원환자의 사소한 문제부터 켄터키주 뿐만 아니라 다른 주에서 쉴새없이 걸려오는 환자 이송에 대한 전화로 웃지 못할, 아니 울고 싶을 정도의 많은 실수를 하여 본의 아니게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또한 마음속 깊은, 정감있는 표현을 제때에 제대로 하지 못해 교수나 다른 CF들과 친숙한 관계를 못 유지하였다 . 그러나 일을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났을 때 , 교수와 모든 당직 CF들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엄지 손가락의 끝부분이 잘려온 환자에서 두시간 반만에 미세현미경 수술로 성공시켜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유창하지 못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자청해서 발표한 7번의 새벽 세미나에서 필자가 보여준 발가락을 이용한 손가락 재건술, 유리 피판 재건술, 화상입은 손의 교정, 손가락 재접합술 등에 대한 수술 결과로 그들의 높은 콧대를 꺾을 수 있었다. 또한 지난 5 년간 제 1저자로 미국 성형외과학회지와 영국 수부외과학회지에 게제되었던 5편의 논문들을 그들이 확인하면서 미세수술만 있으면 교수들이 필자를 찾게 되었고, 호칭도 Dr. Woo에서 Professor Woo로 바뀌었다. 많은 경우 , 해외연수시 기초연구나 임상관찰을 하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조절해 연수기간 동안 시간을 내서 여행이나 운동도 하지만 필자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잠을 좀 더 잘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가족들은 해외연수를 가면 한국에서 못누렸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가 많았었는데 막상 미국에 오니까 집에서는 잠만 자고, 당직한다고 일주일에 2-3일 집에 들어오지 않고, 더 피곤해 보인다고 불평이 많았다. 특히 주말에 예비당직(집에서 하는 대기당직)이라도 겹치면 아무리 좋은 날씨와 경치에도 온 가족이 집안에서 같이 당직하면서(?) 언제 울릴지 모르는 페이저(삐삐)에만 온갖 신경을 다 쏟았다. 출국이 한 달도 남지 않았을 무렵에 당한 갑작스러운 선친의 변고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한과 갈등에 빠지게 했고 , 마치 13-4년전 전공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루이빌의 병원생활은 ‘내가 왜 이 나이에 낯선 나라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로 하루에도 몇번씩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미국 땅에서 자기들이 나를 필요해서 미국 의사면허증까지 얻어주면서 일을 시키고, 내가 전공하는 분야의 세계 최고의 센터에서 그들과 함께 숨을 쉬며 같이 수술을 한다는 사실과 항상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 ‘한국 의사에 대한 첫인상을 좋게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켄터키주의 애칭은 '푸른 잔디의 주(The State of Blue Grass)'로 온 천지가 잔디로 덮여있고, 집앞 정원에는 보통 수 십년된 고목이 한두 그루씩 서 있었다. 그래서 일까? 40년의 역사에 1,000 여명의 CF를 배출한 클라이넛 연구소의 각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들이 여유로웠고, 이들의 이방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가 없었다면 나의 미국 수련과정도 불가능하였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그 바쁜 임상과정 중에서도 ‘사체를 이용한 신전건에 대한 실험적 연구'를 맡겨 계속 스트레스(?)를 준 대만계 Dr. Tsai 교수 부부의 호의와 배려에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장기별 특수클리닉화 추세에 발맞추어 성형외과나 정형외과 구분없이 ‘수부외과' 전문과가 독립되어 손과 팔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 즉, 손지림, 관절염, 골절, 종양, 화상, 손목 통증, 외상, 기형 등을 수부외과 전문의가 해결할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관리자 1998.01.01뮤지컬 '명성황후'가 아쉽게도 대구 공연 계획이 없어 1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부산에 있는 선배의 도움으로 부산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작년 여름, 미국의 서쪽 LA에서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을 때, 뮤지컬의 본고장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이 공연은 막을 올렸다. 뉴욕 타임즈 뿐만 아니라 세계적 언론사들이 앞다퉈 한 극찬을 익히 듣고 있었기에 큰 기대를 갖고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 우유부단한 고종의 뒤에서 대원군이 섭정하여 쇄국 정책을 펼렸으나 서구 열강의 개방에 대한 압력이 거세질 무렵이었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명성황후(민비)는 고종과는 달리 국제적 감각과 결단성이 있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대원군의 섭정을 폐하고 고종의 친정을 권하면서 국정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명한 민비는 일본의 조선에서의 상권과 정치권을 모두 독점하려는 저의를 미리 알아차리고 이를 배척하기 위해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의 삼국을 등에 업고 유럽식 문화의 개방과 개혁을 도모하였다. 이를 눈치챈 일본은 조선을 독차지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민비를 제거하기 위해 '여우사냥'이라는 작적 암호아래 훈련된 일본군 자객들을 궁궐에 침입시켜 조선 왕조를 지키려고 최후까지 몸부림쳤던 민비를 찬인하게 살해하고 그 시체를 불태워버린다. 출연자들의 궁중 의상은 은근하면서도 화려한 우리 한복의 멋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으며, 이를 비추는 화려한 조명, 회전식 무대와 무당굿, 또한 배경 음악으로 한국 음악과 클래식이 멋있게 어우러져 극장 전체에 울려퍼지는 이 뮤지컬은 관객들을 충분한 감동의 순간에 빠뜨릴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민비 역을 맡았던 줄리아드 음대 출신 소프라노 김원정의 호소력 있는 시원한 가창력은 마치 민비가 환생하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의 혼을 일깨우기에 충분하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시해당한 민비와 백성들이 함께 부르는 '백성이여 일어나라' 합창은 이 뮤지컬 최고의 메시지로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하여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양손에 주먹이 불끈 쥐어지게 하였다. 뮤지컬 '명성황후'를 통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인의 불행한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아름답고 지혜로운, 그러면서도 강한 지도력을 겸비했던 명성황후는 너무나 매력적인 여인으로 다가온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활약했던 역사적 공인에 대한 존경심으로 새로이 현재를 조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이 시기에도 가장 필요한 한국적 여인상으로 느껴진다. 민비가 시해 당한지 1세기가 흐른 이쯤에 우리는 또다른 종류의 시련에 휘말리고 있다. 총칼이나 쇄국에 대한 문호개방이 아니라 잘못된 질서와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하고, 비젼없는 지도자들의 용퇴와 집단을 이루는 개인의 개혁을 통하여 불건전한 의식을 송두리째 갖다 바려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관리자 1998.03.0198 Inter plast 네팔 의료봉사 활동 작년에 이런 올해에도 국제 성형외과 의료 봉사활동단체인 'Interplast'의 협조로 10월 26일부터 13일간의 일정으로 네팔에서 해외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작년과는 달리 항공료와 체재비를 우리 팀에서 부담하게 되어 어려운 국내 경제여건과 수해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뚜렸한 재원없이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위한 경비마련이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작년 현지에서 받았던 그 '느낌'은 올해에도 꼭 가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주었기에 이 곳, 저 곳으로 발품을 팔아 경비조달에 나섰다. 수도 카투만두에서 동북방향으로 비포장 도로를 차로 50여분 달리면, 마치 1950년대로 시간이 거슬러간 풍경의 쌍쿠에 다다르게 된다. 원래 나병 환자 치료소였던 이 병원은 현 네팔 수상인 Sushma Koirala가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독일 Interplast와 합동으로 성형외과 병원으로 개조하여 1997년 11월 7일에 문을 열게 되었다.우리가 첫 봉사활동을 왔던 작년 이 때쯤, 병원 사무장이었던 크리스토퍼는 봉사활동팀을 위한 guest house와 상주할 의사를 위한 집을 짓는데 온 정성을 다 기울이고 있었다. 작년엔 카투만두 시내의 호텔에서 쌍쿠 병원까지 매일 비포장 도로를 왔다 갔다 하는 고문(?)아닌 고문을 겪었었다. 2층 양옥으로,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유럽풍의 guest house는 1인1실 혹은 2인 1실의 4개의 방과 2개의 넓은 샤워실, 그리고 중간에 위치한 식당으로 2주간의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작년에는 상주하는 의사없이 독일인 사무직원과 네팔 간호사들만 있다가 올 해 초부터는 독일 쾰른대학 악안면외과 주임 교수로 퇴임한 Dr.Pape가 1년 계약으로 거주하면서 병원의 운영체계가 많이 잡혀가고 있었으며, 작년과는 달리 Dr.Pape가 미리 10일간의 수술 일정을 짜 놓았으며, 신환중 수술할 환자들을 스케쥴 사이에 넣어 매우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Dr.Pape 부부를 대하면서 독일 굴지의 대학에서 주임교수로 은퇴한 노교수가 비록 1년간이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오지에서 자기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위해 묵묵히 불편한 생활을 감래하는 노년의 여유로움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나의 미래를 한번 꿈꾸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에는 주로 언청이 수술을 위주로 하였으나 올 해는 화상 후 수부 및 상지의 심한 변형과 선천성 수부 기형을 중심으로 수술을 시행하였다. 필자가 수부외과와 미세재건 수술 그리고 화상을 주 전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작년에 만났던 많은 화상 후 구축 환자들이 귀국 후에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투만두는 고도 1300m에 위치한 분지로 우기가 지나고 건기가 되면 낮엔 섭씨 30도 가까이 오르고, 새벽이나 밤엔 10도이하로 떨어져 일교차가 심하지만 중급 호텔에도 난방 시설은 전혀 되어있지 않다. 당연히 난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일반 주택에서는 집이나 방가운데 화로나 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우다가 화상을 입는 경우가 허다하고, 적절하게 화상을 치료할 곳이 없으므로 심한 구축 환자가 많아지게 된다. 우리들은 환자와 수술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언제든지 수술이 가능한 '이동수술팀'으로 필자를 단장으로 성형외과 3년차 전공의 강무석, 마취과 전공의 김종균, 의과해학 3학년 학생 양희석 및 수술실 이정숙 간호사 등 5명으로 구성되었다. 수술전 검사를 전혀 하지 않고 전신 마취하에 수술을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병원이라면 모든 검사를 다하고도 혈액응고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수술이 취소되거나 지연될 판이지만 심장과 폐의 청진과 결막을 한번 보고 수술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마취할 김선생이나 수술할 필자의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였다. 화상 후 수부의 심한 구축이 있었던 한 젊은 남자환자는 수술을 못 받을까 걱정되어 병력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 안하다가 수술할 날 새벽에 전신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발작을 일으키는 심한 간질을 앓고 있었으며, 다행히 새벽의 경련으로 수술은 취소되어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소아든 성인이든 아무 불평없이 20차례 이상의 전신마취를 해 준 김선생에게 다시 한번 지면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또한 외래환자 면담과 수술보조, 드레싱, 수술 후 처치 또는 제2집도의로서 모든 역할을 감당한 성형외과 수석 전공의 강선생의 역할도 중요했으며, 또한 요리사(?)로서, 순환간호사(circulating nurse)와 오더리(orderly)의 역할, 그리고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담당했던 의과대학생 양희석군의 역할도 대단하였다. 또한 묵묵히 수술전 수술 후 기계소독과 수술을 도와준 이정숙 수술간호사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렇듯 단원 5명 모두가 일의 구분없이 서로를 도와야하므로 누구 하나라도 탈이 나면 팀웍이 깨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마실 물과 공기가 좋지 못한 이 곳에서 단장의 가장 큰 임무는 단원들의 건강관리였다. 일정이 다 마쳐갈때 쯤이다. 한 네팔기자가 서부 외지에서 만난 15세된 여자환자를 데리고 왔다 .그는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를 간호할 고등학생인 딸까지 동행하였다. 우여곡절끝에 3일만에 도착한 이 환자는 우측눈부터 뺨, 입, 목부위까지 화상 후 심한 구축으로 목을 똑바로 펼 수가 없었는데 과연 어떻게 여태껏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수혈도 필요할 것 같고, 마취를 위한 삽관도 힘들여 보였으며, 전신건강상태도 그리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환자를 본 모든 단원들은 이 환자를 위해 반드시 뭔가를 해주어야 하겠다고 의견일치가 되었고, 특히 마취를 할 김종균 선생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수술일정 마지막 날이지만 Dr.Pape와 함께 수술을 하였다. 우리 병원이었다면 물론 수술 현미경을 이용한 유리 피판수술을 시행했겠지만 이것 저것 따질 환경이 아니므로 심한 구축 피부는 Z-성형술로 턱 부위를 덮고, 목 부위는 대흉근 상부의 Bakamjian 피판으로 덮었으며, 공여부는 피부 이식술로 재피복하였다.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기 소작기로 철저히 지혈을 하였고, 수술 전날 창고에서 발견한 한 병의 덱스트란 용액은 발에 확보한 정맥으로 주입하여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이차적으로 눈과 입에 수술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목을 바로 펴고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봉사활동의 바쁜 수술일정을 마치고 카투만두에서 비행기로 4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포카라로 1박2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신이 창조한 최고의 걸작품이라고나 할까? 수없이 많은 하얀 뭉게구름을 발아래에 도열시키고 그 위에 하늘로 우뚝 솟은 순백의 히말라야!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광경은 동서로 길게 뻗은 희말라야의 사열을 받는 듯하다. 비행고도 보다 더 높아 보이는 이름 모를 희말라야의 정상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위대함에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였다. 네팔에는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파견된 2명의 의사 외에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의학교육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손건영 교수는 경북의대생화학 교실에 재직하다가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이 나라로 이사를 왔다. 아직은 학기중이라 정식 수업대신에 트리부반 대학 생화학 교실의 스텝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는 중이다.비록 수도물로 손을 한번 씻으려고 해도 정수기로 2번 거른 다음 생수물로 한번 더 씻어야 하는 불편한 생활이지만 선교 헌금과 여러 사람들의 후원금으로 너무나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다. 전공 분야의 연구와 자기 발전을 제쳐놓고 오지에서 만족스럽게 생활하는 손교수의 신앙심과 의지에 과연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과 부러움이 들었다. 이젠 의사가 환자를 찾아다녀야 하는 냉정한 우리의 현실에서 한번쯤은 일상의 굴레와 속박을 훌훌 털어버리고 간절하게 의사의 손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이다. 이 나라 곳곳에는 선진각국이 경쟁이나 하듯 앞다퉈 병원을 지어놓고 협력의사를 파견하고 있다. 치료비는 물론 병원의 경영에 필요한 소모품과 의사를 비롯한 모든 네팔직원의 월급도 선진각구에서 부담하고 있다. 국내에는 수련과정을 마치고 국가가 인정한 수많은 전문의들이 공중 보건의로서 감기약을 처방하면서 비효율적으로 젊음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겨우 1년에 3~4명의 일반외과 전문의가 나올 정도니 전세계적으로 전문의사의 편중화현상은 앞으로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올 해에도 우리 봉사팀의 방문에 저녁식사로 따뜻한 환대를 해주신 네팔주재 한국대사관의 황부홍대사님과 노재영서기관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이번 봉사활동에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을 주신 의료원장님과 학장님, 병원관계자, 성형외과 주임교수님, 영남의대 동창회, 영성회회원 및 대구달성 고등학교 동문회에 지면으로 나마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또한 비록 국내 사정도 어렵지만 우리 팀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와 주신 국제로타리 3700지구(서대문 로타리) 임창곤 직전총재께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며, 향후에도 끊이지 않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이 가능하도록 조직적인 협력을 부탁드리고, 이러한 활동들이 더 많은 병원에서, 더 많은 나라의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관리자 1998.11.30지난 1998년, IMF를 지나면서 온 나라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릴 때였다. 달오 동기들의 자발적이고 정성어린 협조로 두번째 네팔 해외의료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국내 경제상태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네팔에 꼭 가야 했던 것은 첫번째 활동에서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절대빈곤으로 의료혜택이 전무한 곳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료봉사활동을 기다리는 그들의 얼굴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환자는 18세 남자로 양손이 손목 이하에서 절단되어 혼자서는 똥오줌도, 밥도 알아서 해결할 수 없었다. 손 수술을 전문으로 한국에서는 손가락이 없는 경우에 발가락을 옮겨 신경과 인대를 재건하여 기능회복을 시키는 최고의 전문가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과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답함 밖에 없었다.행운이라고 할까? 1999년, 미국에서 가장 큰 수부외과 및 미세수술 센터인 클라이넛 연구소에서 한국 최초의 정식 임상교수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그해 2월달에 이곳에서 미국 최초의 팔 이식 수술을 시행하였다. 이때부터 이 수술의 책임 집도의와 수술받은 환자를 직접 대하면서 팔 이식술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시작하였다.1950년대 중반에 장기 이식수술로는 처음으로 신장(콩팥) 이식술을 시행했을 때 지금처럼 일반인들이 다 알정도로 확실한 수술 방법이 될 줄 아무도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현재도 팔 이식수술에 대하여 의사들조차도 불가능하다고 믿고있지만 수술을 받은 두명의 환자는 건강하게 잘 유지되고 있고, 이식받은 손은 구두끈 묶고 풀기, 작은 나사 돌리기, 야구공 던지고 받기 등 상상이상으로 좋은 기능회복을 보여주고 있다. 면역억제치료의 부작용으로 윤리적인 문제도 대두되고 있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신체 훼손을 금기시 하는 사회적 관념으로 장기를 주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팔이식술은 신장, 심장, 혹은 간과 같이 한종류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팔은 근육, 뼈, 골수 및 신경 그리고 조직중에서 거부반응이 가장 심한 피부 등 여러가지 조직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수술 후에 해야 할 면역억제 치료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워 여태껏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실험과 연구결과 현재는 놀랍게도 신장 이식 때와 비슷한 용량의 면역억제 치료로 잘 유지되고 있다.몇일 전, 중앙지와 지방 신문에 영남대학병원에서 ‘팔 기증자를 찾습니다’ 라는 제하의 기사가 나간 후 전국에서 팔이 없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외래로 찾아오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이젠 자기의 신체도 절실하게 필요한 환자에게 남길 수 있으니 살아있을 때 열심히 살고, 죽어서는 이름과 신체를 모두 남기는게 어떨까(너무 무시시한가)? 팔 이식수술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번도 시행되지 못한 수술이라 팔 기증자만 있다면 최초로 이 수술을 집도하여 우리나라의 팔 재건술과 장기이식술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관리자 2000.01.10인간에게 손이 없었다면? 아마 현재와 같은 문명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외상이나 화상으로 손가락이나 손, 심지어 팔을 상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가정이나 직장에서 입은 사소한 외상·화상, 혹은 선천성 기형 때문에 손의 변형 이나 마비, 운동장애 등의 불편을 겪는 사람도 있다.손과 손가락의 해부학적 구조는 무척 복잡하다. 손가락 피부에 1cm밖에 안되는 작 은 찢긴 상처가 나더라도, 그 속에 있는 인대·신경·혈관까지 손상 당할 수 있다 . 따라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손 상처는 반드시 전문의의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화상을 입었을 경우, 손 기능 회복에 중점을 둔 피부 이식술이나 인대 수술 등이 필요하다. 심하게 손을 다치거나 절단됐을 때는 차분한 대처가 필요하다. 먼저 깨끗한 물에 상처 부위를 씻고 손상 부위를 물에 적신 거즈나 수건으로 싼 후, 출혈이 멈출 수 있는 적당한 힘으로 감아주고 심장 보다 더 높이 올려주는 것이 좋다. 손가락이나 손·발이 절단된 경우에는 잘려나간 부위를 반드시 병원으로 가져가야 한다. 절단된 부분은 흐르는 깨끗한 물에 씻은 후, 물에 적신 거즈로 싸서 비닐 봉지에 넣고, 그 봉지를 얼음과 물이 들어 있는 통에 넣으면 가장 좋다. 손상 후 무조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8~12시간 이내에 처치하면 수술시간으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완전히 절단된 경우는 수술이 빠를수록 좋다. 사고 후에는 환자가 음식이나 물을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 전신 마취를 위한 공복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 최근 미세수술이 발전함에 따라 재접합 수술의 성공률은 80~90%에 이르고 있다. 외상 당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면 손가락 감각 이 무뎌지거나, 주먹을 완전히 쥐지 못한다거나, 손을 다 못 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심하면 운동신경 마비가 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각종 정밀검사로 문제를 파악한 뒤 뼈나 신경의 이식, 인대 전이 수술 등을 하면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 오래 전에 손가락을 상실했거나 선천성 기형으로 손가락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는 발가락을 떼 재건수술을 한다. 발가락을 제거한 후 초래될 발의 기능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경우가 많으나, 수술 후 걷기나 일상생활, 운동 등을 할 때 불편을 느끼 는 경우는 드물다. 우상현교수(영남대병원 성형외과) 기사 작성일 : 2000년 12월 19일
관리자 2000.12.19'손가락이 자주 저립니까?', '손이 저려 털거나 흔들어주는 경우가 있습니까?', '손이 저리고 아파 밤에 자다가 깬 경험이 있습니까?', '자다가 손에 타는 듯한 통증과 무감각을 느껴 잠이 깨거나, 손을 털면 통증이 가라않는 증세가 반복된 적이 있습니까?' 이 병은 터널 모양의 손목 중앙으로 지나가는 신경이 손목의 과도한 사용이나 혹 등으로 주위 힘줄이나 힘줄들을 싸는 막에 의해 압박을 받아 발생하는 신경 압박증후군일 확률이 높다. 주로 설거지나 집안청소 등 가사에 시달리는 중년의 주부, 컴퓨터 등 손목을 많이 쓰는 직장인이나 근로자, 비만증, 당뇨병, 류머티즘, 종양, 골관절의 변형 및 골극, 갑상선 기능장애가 있는 환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임신 중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 원인 목에서 시작되어 손가락 끝까지 전깃줄처럼 퍼져 나오는 3가지 신경이 손과 팔의 운동과 감각을 조절하는데, 이 신경들이 지나오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신경이 압박을 받아 신경증상이 나타난다. △ 손목관절부위 = 정중신경이 수근관(손목관절의 가장 큰 횡인대)에 의해 압박을 받아 엄지 손가락과 둘째, 셋째 손가락이 저리고 아픈 현상이 발생한다. 밤에 주로 발생하여 자다가 자주 깨어나게 되고, 손목의 나쁜 자세로 인한 경우가 많아 컴퓨터 사용이 많은 직장인, 자동차 핸들을 자주 돌리는 운전기사, 빨래 등 손목 뒤틀림이 많거나 손목을 많이 쓰는 주부들에 흔하다. 가장 흔한 손저림의 원인이다 △ 팔뚝부위 = 주로 팔뚝의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 즉 무거운 것을 많이 드는 일반 노동자들에게 많고 손목관절 신경 압박과 유사하여 감별 진단이 요구된다. △ 팔꿈치관절 = 척골 신경이 눌리는데 쉽게는 팔꿈치관절이 과하게 바깥으로 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다. 팔꿈치관절 주위에 반복적인 외상이나, 골절 후에 팔꿈치 관절이 밖으로 휘는 외반주(cubitus valgus) 변형, 반복적인 탈구, 급성 외상, 감염, 기형근육에 의한 압박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팔꿈치관절을 구부려 오래 있는 경우, 즉 잘 때 팔을 구부려 베고 자는 자세가 가장 나쁘다. 또한 일반적으로 책상과 의자에서 공부하거나 일할 때 좋지 못한 자세가 문제가 된다. △ 어깨부위 = 쇄골(빗장뼈)아래, 위에서 목에서 나오는 신경이 여러가지 이유로 눌리게 되는 경우인데, 선천성 기형, 사각근의 비후, 종양 및 외상, 과거에 빗장뼈의 골절이 있거나 선천적으로 첫번째 갈비뼈가 긴 경우 등이다. ◈ 자가 진단 및 진단방법 엄지, 검지, 중지 등 세 손가락이 많이 저리고 아픈 경우는 양 손목을 구부려 손등을 서로 맞 닿이도록 하거나, 혹은 손목의 중앙부를 반대편 엄지손가락을 눌러 1분쯤 경과하면서 손저림이 더 심해지면 정중신경압박(수근관증후군, 손목관절 부위)을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엄지 손가락이 위치한 손바닥에 볼록한 근육이 편평해지고, 엄지손가락과 둘째 손가락으로 집는 힘이 약해지면, 이미 신경 압박이 상당히 진전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네번째와 다섯번째 손가락이 저리면서 감각이 무디고, 젓가락질이나 병두껑을 열기가 힘들어지면 팔꿈치를 최대한 굽혀 저린 감각을 동반한 동통이 30초 이상 경과하면 척골신경압박 증후군(팔꿈치관절 부위)을 의심을 해야한다. 이 경우에는 손등 부위 쪽의 엄지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 사이에 근육이 힘이 없어지고, 위축이 되어 오목하게 파이게 되고 물건을 쥘 때 3, 4, 5번째 손가락의 힘이 약해 자주 물건을 떨어뜨리게 된다. 쇄골부위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손에 오는 모든 신경들이 압박을 받아 손 전체의 저림과 마비가 동반될 수 있다. 특히 팔을 위로 들어 올려 오랜 작업을 할 수 없고 팔 전체 힘이 빠질 뿐만 아니라 손저림과 통증이 온다. 이런 증상과 간단한 테스트를 기초로 신경전도검사 및 근전도검사를 하면 거의 결정적인 진단을 할 수 있으며, 일반 방사선, 초음파 및 MRI도 도움이 된다. ◈ 치료 및 수술방법 단지 손저림과 약한 통증만 있는 초기 증상은 보존적 치료로서 손과 팔의 바른 자세, 비타민 B와 비스테로이드 항 염증 약제를 복용하고, 부목 착용으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즉 손목이나 팔뚬치 관절이 굽혀지는 자세로 하는 과도한 일을 피해야 하고, 약물복용을 하면서 밤에는 손목이나 팔목을 펴주는 부목을 하고 자야한다. 좀 더 심할 경우에는 2-3차례 스테로이드와 마취약을 혼합한 약제를 신경이 눌리는 곳에 주사를 해주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도 증세와 징후가 지속적이거나 악화되는 경우 수술을 고려해야 하고, 이 수술은 압박 받는 신경부위의 구조물들을 절개하여 이완시킴으로 압박을 없애주는 것이다. 팔꿈치 관절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피부절개를 통하여 뒤로 치우쳐 있는 신경을 앞으로 이동시켜 팔꿈치 관절을 구부려도 신경이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한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며, 보통 팔만 마취하는 국소마취로 수술을 하고, 2박3일 정도 입원하든지 통원치료도 가능하다. ◈ 예방 예방을 위해서는 좋은 자세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책상에서 컴퓨터 작업시 = 머리, 목과 양쪽 어깨를 일직선상에 두고, 화면의 높이는 정면 바로 아래 둔다. 등을 의자에 완전히 기대고 팔꿈치는 90°정도로, 무릎은 90°~100°정도로 굽힌다. 손목도 긴장을 완화한 채 수평으로 펴서 작업한다. △ 필기 도구 사용시 = 가능한 필기도구를 꽉 움켜쥐지 말고 가볍게 필기를 하고, 필기할 때 손의 긴장을 풀고 자주 휴식을 취한다. △ 사무실 운동 프로그램 = 주먹을 꼭 쥐고 양팔을 끌어안고 다리의 모든 근육에 힘을 주어 편 채 약 5초간 숨을 깊게 들이쉰 후 근육의 긴장을 풀어준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완전히 폈다가 다시 주먹을 꼭 쥐고 긴장을 풀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다. 손목과 발목을 바깥쪽으로 큰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려주고 다시 반대로 돌려준다. 양쪽 손을 등 뒤에 받히고, 등을 바로 펴고 서면서 천천히 뒤로 굽힌다. 이와 같은 동작을 몇 번 반복한다. 머리를 좌우로 돌리고 같은 동작을 몇 번 반복한다. 머리를 좌우로 돌리고 앞으로 숙인다. 머리를 우측으로 돌리면서 턱을 들어올린다.(약 5초간 반복한다.) 어깨관절의 긴장을 풀고 앞뒤로 돌린다. 팔꿈치를 90도로 하고 팔을 바깥으로 회전시킨다. 손을 잡고 양팔을 높게 들어올린 채 몸통을 좌우로 돌려준다.
관리자 2001.03.061. 증상'손가락이 자주 저립니까?' '손이 저리고 아파 밤에 자다가 깬 경험이 있습니까?'혹은 '쥐었던 물건을 떨어뜨린 적이 있습니까?'흔히들 혈액순환 장애나 그저 단순한 만성 통증, 혹은 풍(뇌졸증)의 한 증상으로 치부하여 여러가지 민간요법이나 한방요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병은 터널 모양의 손목 중앙으로 지나가는 신경이 손목의 과도한 사용이나 혹 등으로 주위 힘줄이나 힘줄들을 싸는 막에 의해 압박을 받아 발생하는 신경압박증후군일 확률이 높다. 미국에서는 손수술 중에서 가장 흔히 행해지는 수술이지만 아직 일반인들의 인식이 부족하여 제 때에, 제대로 진단을 못 받고 있다. 주로 설거지나 집안청소 등 가사에 시달리는 중년의 주부, 컴퓨터 등 손목을 많이 쓰는 직장인이나 근로자, 비만증, 당뇨병, 류마티스 관절염, 종양, 골관절의 변형 및 골극, 갑상선 기능 장애가 있는 환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임신 중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2. 원인목에서 시작되어 손가락 끝까지 전깃줄처럼 퍼져 나오는 세가지 신경이 손과 팔의 운동과 감각을 조절하는데, 이 신경들이 지나오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신경이 압박을 받아 신경증상이 나타난다.(1) 손목관절 부위정중신경이 수근관(손목관절의 가장 큰 횡인대)에 의해 압박을 받아 엄지 손가락과 둘째, 셋째 손가락이 저리고 아픈 현상이 발생한다. 밤에 주로 발생하여 자다가 자주 깨어나게 되고, 손목의 나쁜 자세로 인한 경우가 많아 컴퓨터 사용이 많은 직장인, 자동차 핸들을 자주 돌리는 운전기사, 빨래 등 손목 뒤틀림이 많거나 손목을 많이 쓰는 주부들에 흔하다. 가장 흔한 손저림의 원인이다.(2) 팔뚝 부위주로 팔뚝의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 즉 무거운 것을 많이 드는 일반 노동자들에게 많고 손목관절 신경압박과 유사하여 감별 진단이 요구된다.(3)팔꿈치관절척골신경이 눌리는데, 쉽게는 팔꿈치관절이 과하게 바깥으로 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팔꿈치관절 주위에 반복적인 외상이나, 골절 후에 팔꿈치관절이 밖으로 휘는 외반주(cubitus valgus)변형, 반복적인 탈구, 급성 외상, 감여, 기형근육에 의한 압박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팔꿈치관절을 구부려 오래 있는 경우, 즉 잘 때 팔을 구부려 베고 자는 자세가 가장 나쁘다. 또한 일반적으로 책상과 의자에서 공부하거나 일할 때 좋지 못한 자세가 문제가 된다.(4) 어깨부위쇄골(빗장뼈) 아래, 위에서 목에서 나오는 신경이 여러가지 이유로 눌리게 되는 경우인데, 선천성 기형, 사각근의 비후, 종양 및 외상, 과거에 빗장뼈의 골절이 있거나 선천적으로 첫번째 갈비뼈가 긴 경우 등이다.3. 자가 진단 및 진단방법엄지, 검지, 중지 등 세 손가락이 많이 저리고 아픈 경우는 양 손목을 구부려 손등을 서로 맞닿이도록 하거나, 혹은 손목의 중앙부를 반대편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 1분쯤 경과 후 손저림이 더 심해지면 정중신경압박(수근관증후군, 손목관절 부위)을 의심해 볼여지가 있다 .엄지 손가락이 위치한 손바닥의 볼록한 근육이 편평해지고, 엄지 손가락과 둘째 손가락으로 집는 힘이 약해지면 이미 신경압박이 상당히 진전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네번째와 다섯번째 손가락이 저리면서 감각이 무디고, 젓가락질이나 병두껑을 열기가 힘들어지며 팔꿈치를 최대한 굽혀 저린 감각을 동반한 동통이 30초 이상 경과하면 척골신경압박증후군(팔꿈치관절 부위)을 의심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손등 부위쪽의 엄지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 사이의 근육이 힘이 없어지고, 위축이 되어 오목하게 파이게 되며 물건을 쥘 때 3,4,5번째 손가락의 힘이 약해 자주 물건을 떨어뜨리게 된다.쇄골 부위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손에 오는 모든 신경들이 압박을 받아 손 전체의 저림과 마비가 동반될 수 있다. 특히 팔을 위로 들어올려 오랜 작업을 할 수 없고 팔 전체의 힘이 빠질 뿐만 아니라 손저림과 통증이 온다. 이런 증상과 간단한 테스트를 기초로 신경전도검사 및 근전도검사를 하면 거의 결정적인 진단을 할 수 있으며, 일반 방사선, 초음파 및 MRI도 도움이 된다.4. 치료 및 수술방법단지 손저림과 약한 통증만 있는 초기 증상은 보존적 치료로서 손과 팔의 바른 자세, 비타민B와 비스테로이드 항염증 약제를 복용하고, 부목 착용으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즉 손목이팔 팔꿈치관절이 굽혀지는 자세로 하는 과도한 일을 피해야 하고, 약물복용을 하면서 밤에는 손목이나 팔목을 펴주는 부목을 하고 자야한다. 좀 더 심할 경우에는 2 - 3차례 스테로이드와 마취약을 혼합한 약제를 신경이 눌리는 곳에 주사를 해주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도 증세와 징후가 지속적이거나 악화되는 경우 수술을 고려해야 하고, 이 수술은 압박받는 신경 부위의 구조물들을 절개하여 이완시킴으로 압박을 없애주는 것이다.팔꿈치관절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피부절개를 통하여 뒤로 치우쳐져 있는 신경이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한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며, 보통 팔만 마취하는 국소마취로 수술을 하고, 2박3일 정도 입원하든지 통원치료도 가능하다.
관리자 2001.04.01발의 선천성 기형은 손 기형에 비해 기능장애가 적고, 노출이 되지 않아 관심을 덜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발은 우리 몸의 체중을 모두 받는 부분이라 방치하면 발의 변형과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 1~5세부터 서서히 나타나 > △짧은 발가락 = 출생 때는 전혀 표시가 없다가 1~5세 때부터 서서히 나타난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엄지발가락이나 네 번째 발가락이 짧은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다. 이것은 발가락이 짧은 것이 아니라 발등뼈(중족골)가 짧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뼈의 성장을 결정하는 골성장판이 일찍 폐쇄되어 생긴 선천성 기형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25배 정도 많고 70%이상이 양쪽 발에 생긴다.엄지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에 기형이 많다. 체중은 엄지발가락에 많이 받게 되는데 엄지발가락이 짧으면 두 번째 발가락으로 부하가 옯겨가 발바닥에 티눈이 생겨 통증을 유발한다. 또 두 번째 발가락이 엄지발가락 위로 기울어지는 발가락 변형이 초래돼 신발착용이 불편해 진다.뼈만 길게 하는 것이 아니고 발가락의 인대, 피부, 혈관신경 등 모든 조직을 늘이는 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 후 2~6주까지는 석고 신발을 신고 걸어야 하며, 6주가 지나면 정상 보행이 가능하다. < 1,2세 전후 수술 적기 > △다지증과 합지증 = 발가락이 정상보다 많거나, 발가락이 합쳐져 있는 경우다. 다섯째발가락이 2개가 되면서 발가락 사이사 붙어있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발가락이 붙어 있는 합지증은 임신 7주에 발가락 분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아서 생기며, 발가락이 많은 다지증은 발가락의 분화가 중복되어 생긴다. 이것이 동시에 일어나면 다지·합지증이 된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므로 아기의 건강상태와 부모의 심리적 안정 등을 고려, 수술은 1,2세 전후가 좋다. 기능장애가 없다면 유치원에 갈 때까지 기다려도 문제는 없다. 발가락이 많으면 기능이 적은 발가락을 제거하는 것이 수술의 원칙이다. 드물게 피부이식술이 필요한 때도 있다. 우상현 교수 (영남대병원 성형외과)
관리자 2001.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