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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명의]더블유(W)병원 우상현 원장
w병원 | 2008-09-25 00:00:00 | Hit : 44,248

[매일신문][명의]더블유(W)병원 우상현 원장

 

 

“추석을 이틀 앞둔 12일 밤 11시쯤 휴대전화로 1339(응급의료센터)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손가락이 잘린 응급 환자가 대구에서 병원을 구하지 못해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수술을 맡아주면 대구로 응급차를 돌리겠다는 것이었죠. 환자를 외면할 수 없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밤새 수술에 매달렸습니다.” 우상현 대구 더블유(W)병원 원장은 수부외과 세부 전문의다. 손저림, 선천성 손`발 기형, 손가락 봉합 분야 전공인 우 원장은 1994~2002년 영남대병원 교수로 있다가 학교를 떠난 뒤 대구의 현대병원과 강남병원을 거쳐 지난 16일 더블유병원을 개원했다.

사실 대구경북에서 실력 있는 수부외과 의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잦은 응급 수술로 스트레스는 높은 반면 다른 비보험 진료과목과 비교해 수입은 떨어져 젊은 의사들이 지원을 꺼리는 탓이다.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실과 바늘로 지름 1㎜미만의 가는 혈관을 현미경 아래에서 꿰매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힘들고 어려운 수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부외과를 전공한 이유는 역시 ‘보람’입니다. 수술 자체는 힘들지만 수술 끝에 얻어지는 보람은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어렵죠. 팔다리가 잘린 절망의 상태에서 구급차에 실려왔다가 수술과 치료가 끝난 후 희망의 미소를 지으며 퇴원하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이 분야를 선택하길 잘했구나’하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우 원장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환자에게 새 삶과 새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큰 가치는 없을 것”며 “기왕에 의사의 길을 택했다면 수부외과를 포함해 더 어렵고 더 힘든 분야에 도전하는 후배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 원장의 일에 대한 신념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 실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수부외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루이빌대학 클라이넛 수부미세수술센터에서 한국인 최초의 임상교수를 지냈다. “마흔 넘어서 죽을 고생 한번 해봤죠. 주중, 주말에 한번씩 당직이 돌아오는데 꼬박 밤을 새워야 했거든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동양인이라는 설움까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견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도 못할 고생이었지만 세계 최고 수부미세수술센터에서의 경험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는 발가락을 이용한 손 재건술에서 98.5% 이상의 수술 성공률을 얻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2004년 3월 손가락이 잘렸으나 접합이 불가능한 경우 환자의 발가락을 이용해 재건수술을 시도하는 ‘급성 수부손상에서 즉지 족지 전이술’ 논문이 성형외과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인 미국성형외과학지에 게재됐고, 2005년 ‘제15회 과학기술 우수 논문상’으로 이어졌다.

우 원장은 “곧 출간될 미국 수부외과들을 대상으로 한 영문교과서(수부와 상지 재건술)에도 발가락을 이용한 ‘엄지손가락 재건술’의 저자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 논문 80여편과 SCI논문 17편을 발표한 우 원장은 1999년 대한수부재건외과학회 최우수 논문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5,2006년 대한수부외과학회와 2002,2004,2005,2007년 대한미세수술학회의 최우수, 우수 논문상까지 받았다.

이 같은 결과로 우 원장은 2005년과 2006년 세계 3대 인명사전으로 꼽히는 ‘마르퀴스 후즈 후’와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에 연거푸 등재되는 영광도 안았다. 그에게 남은 꿈이 있다면 국내 처음으로 팔 이식수술에 도전하는 것. 심장`간`콩팥 같은 단일기관과 달리 뼈`신경`혈관`근육 등 복합조직으로 이뤄진 팔 이식은 세계적으로도 1990년대 들어서야 겨우 성공한 ‘꿈의 의료’ 분야다.

우 원장은 “응급수술 때문에 같이 놀아주지 못해 늘 미안했던 딸이 아빠처럼 봉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며 “‘돈’ 안 되는 수부외과 전문의에게 시집와 고생하면서도 믿고 따라 준 아내에게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