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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환자의 만족도 = 의사의 스트레스 [1996. 06. 21]
w병원 | 2008-12-23 00:00:00 | Hit : 41,371

공장이나 인쇄소, 심지어 식당이나 가정에서도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는 빈번히 일어난다. 그렇지만 다행하게도 수술현미경의 발달과 미세 수술 술기의 향상으로 웬만한 절단된 손가락은 재접합이 가능하고, 수술결과도 우수하여 감각과 기능을 갖춘 손가락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수술 현미경하에서 시행하는 손가락 재접합 수술은 이젠 대학병원의 성형외과 전공의가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술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손부위가 너무 심하게 손상을 입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절단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경우에는 수상 후 6개월이나 일년정도 있다가 2차적으로 손가락 재건 수술을 하는데, 최근에는 발가락을 손가락으로 옮기는 수술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해 초 봄, 안경테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30세 여성이 손가락이 걸레처럼 짖이겨진 채 응급실로 실려왔다. 춘공증을 참지 못해 안경테를 찍어내는 프레스기에 좌측 엄지 손가락 일부와 나머지 4개 손가락 모두가 찍혀버린 것이었다. 도저히 재접합 수술이 불가능하여 절단 수술을 하고 나니 손가락 없는 손이 되어 버렸다. 어려운 농촌 가정의 장녀로 동생들 학교 뒷바라지에 혼기 마저 놓쳐버린 노처녀였다. 지난 생에 대한 회한과 함께 손의 통증으로 수술 후 초기에는 심한 우울증을 호소 하였다. 일년이 지나고 다시 봄 기운이 완연하던 올 4월, 그 처녀가 손가락 재건수술을 받고 싶다며 수술날짜를 예약하러 외래를 방문 하였다.


수술을 권하는게 썩 내키지 않았지만 환자가 원하는데로 좌측 두 번째와 세 번째 발가락을 좌측 손으로 옮기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발가락을 손가락으로 옮기는 수술은 결국발가락으로 가는 미세 혈관을 분리해서 손가락에 남아 있는 작은 혈관으로 연결해야 하는 미세 수술이다. 특히 여자의 경우 혈관의 굵기가 1mm안팎으로 가늘어 수술이 실패할 경우에는 드물지만 결국 발가락만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아침 8시에 시작한 수술은 발가락의 뼈, 인대, 신경 및 혈관을 찾아 손의 각 구조물에 연결한 후 큰 문제없이 6시가 지나서 끝이 났다. 마취회복실에서 환자와 재건된 손가락의 상태를 확인하고 퇴근하였다. 병원 동기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 당직 성형외과 전공의 선생의 다급한 전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9시가 지나면서 옮겨진 발가락의 색깔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확인해보니 혈류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손가락 절단 수술 이후에 보였던 환자의 얼굴 표정과 눈물이 생생하게 기억나면서 발가락마저 없어 졌을 때 받을 환자의 충격을 상상하니 눈 앞이 캄캄했다. 먹던 저녁식사를 뒤로 하고 바로 수술실로 달려갔다. 막힌 혈관을 자르고 손목 부위에서 혈관 이식을 해 다시 연결한 후 따뜻한 생리식염수와 혈관 확장제를 뿌리고 나니 하얗게 죽었던 발가락이 다시 분홍빛을 띄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수술은 새벽 4시가 지나서야 마쳤다. 환자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과 계속된 수술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주말 봄나들이를 계획했던 가족들에게도 결국 큰 죄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처녀환자는 좌측발에서 발가락 두 개가 없어졌지만 보행에는 큰 지장이 없고, 새로 만들어진 두세번째 손가락으로 전화기도 들 수 있게 되었다. 오른손과 함께 양손으로 설거지도 가능하게 되어 환자가 느끼는 만족도가 무척이나 높아진 것이다. 곧 시집을 갈거니까 네번째 다섯번째 손가락도 만들어 결혼 반지를 낄 수 있도록 3차 수술 부탁까지 하면서 즐거운 표정이었다.
수술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최선의 노력, 그리고 수술 후 경과에 따른 민첩한 응급처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없지 않다.
이 때 의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심하면 경제적 손실이나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무엇보다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수술전에 받는 스트레스는 수술에 대한 완벽한 준비오 ㅏ연구로 달랠 수 밖에 없다. 의사가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환자의 만족도는 높아질 것으로 자위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