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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醫窓] 엄지 손가락이 닮았네! [1997. 02. 21]
w병원 | 2008-12-23 00:00:00 | Hit : 41,660

지난 가을, 자정이 지난 시간에 집 전화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응급실에서 당직하는 레지던트 선생으로부터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가 있긴 하지만 평소와는 내용이 좀 달랐다. 30대 후반의 남자가 오른손 엄지 손가락이 절단되어 응급실로 왔는데, 어떻게 다쳤는지 횡설수설 한다는 것이었다.


엄지 손가락이 손바닥과 접하는 부위에서 완전히 절단되었는데 절단면이 깨끗하지가 않았고, 엄지 손가락의 관절을 굽히는 인대가 팔꿈치 근처에서 뽑혀 나왔다. 물론 엄지 손가락의 뼈도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절단된 신체부위는 가능하면 빨리 재접합 수술을 하는 것이 수술 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새벽이지만 응급수술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자세한 환자의 병력을 묻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절단된 환자의 엄지 손가락은 환자 자신의 입으로 물어 뜯었다는 것이 아닌가? 절단된 부의가 깨끗하지 않고 자해를 한 경우에는 재접합 수술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절단된 신체 부위의 재접합 수술을 위해서는 환자의 건강상태가 장시간의 전신 마취를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수술 후에도 의사의 지시에 따라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 연결한 혈관이 막히는지 계속해서 감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환자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인쇄소 절단기나 칼에 절단된 경우에는 절단면을 생리 식염수로 많이 씻어 주고 예방적인 항생제 투여를 하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개나 사람에게 물린 상처는 금방 봉합을 해서는 안된다.


재접합 수술 대신 상처 봉합 수술만 하고 바로 정신과에서 입원 치료를 하였다. 한참 지나서 말끔한 신사가 성형외과 외래를 방문하였다. 바로 그 환자였다. 응급실에서 술에 취해 있던 일그러진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겸연쩍어 하면서 그때는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싱긋이 웃으면서 이야기 하였다. 최근에 사업 실패를 하고 늦게 장가를 가서 얻은 첫 딸의 엄지 손가락이 태어날 때부터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고민으로 계속해서 술을 마시게 되고, 그날따라 과음 끝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였다. 정신과에서는 [단기 정신병적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에서 한달 정도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일단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아무런 증상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손의 선천성 기형을 가진 [딸]에 대한 죄책감과 사업 실패로 인한 무능한 아버지라는 죄의식 같은 것들이 환자의 잠재 의식에 쌓여 환자 자신의 손을 딸의 손과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다.


환자는 평소에 있던 엄지 손가락이 없어져 느끼는 불편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문고리르 잡는다든지, 전화기를 들 때, 운전도 불편해서 못하겠고, 심지어 숟가락을 드는 일 조차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정신과와 상의한 다음 엄지 손가락 재건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곧 바로 수술을 시행하였다.


일반적으로 엄지 손가락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엄지발가락이나 두번째 발가락을 옮겨 가는데, 대부분 수술 후 기능적이나 미용적인 면에서 결과가 우수한 엄지 발가락을 많이 이용한다. 그렇지만 가능한 보행이나 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엄지 발가락의 중요한 부분을 남기면서 수술을 해야하는 수술기법이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유교적 관념으로 신체의 일부를 만들기 위해 신체의 다른 부위를 희생하는데 대하여 많은 장벽이 있다. 즉 [손가락만 병신이면 되지 발가락까지 병신이 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수술 후 발은 항상 양말로 가려지고, 일반적인 보행이나 운동에 지장이 없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다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수술에 대한 편견과 이해부족으로 수술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에 엄지 손가락을 재건하는 수술이 의료 보험 급여로 되어 환자의 수술비 부담이 많이 줄어 들었다.
설이 지난 다음날, 외래를 다시 방문한 환자는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많이 걸어 다니지만 큰 불편함은 없다고 하였다. 새로 생긴 엄지 손가락으로 자연스럽게 악수도 하고, 운전도 하게 되어 매우 만족하였다. 몇 개월 후 있을 딸의 수술도 잘 부탁한다고 하면서 자기 회사의 자동차로 차를 바꿀 생각이 없느냐고 넌지시 묻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