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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굴레와 속박 털고 '醫' 원하는 곳에 우리가... [1998. 11. 30]
w병원 | 2008-12-23 00:00:00 | Hit : 41,325

98 Inter plast 네팔 의료봉사 활동

작년에 이런 올해에도 국제 성형외과 의료 봉사활동단체인 'Interplast'의 협조로 10월 26일부터 13일간의 일정으로 네팔에서 해외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다. 작년과는 달리 항공료와 체재비를 우리 팀에서 부담하게 되어 어려운 국내 경제여건과 수해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뚜렸한 재원없이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위한 경비마련이란 여간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작년 현지에서 받았던 그 '느낌'은 올해에도 꼭 가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주었기에 이 곳, 저 곳으로 발품을 팔아 경비조달에 나섰다.

수도 카투만두에서 동북방향으로 비포장 도로를 차로 50여분 달리면, 마치 1950년대로 시간이 거슬러간 풍경의 쌍쿠에 다다르게 된다. 원래 나병 환자 치료소였던 이 병원은 현 네팔 수상인 Sushma Koirala가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독일 Interplast와 합동으로 성형외과 병원으로 개조하여 1997년 11월 7일에 문을 열게 되었다.
우리가 첫 봉사활동을 왔던 작년 이 때쯤, 병원 사무장이었던 크리스토퍼는 봉사활동팀을 위한 guest house와 상주할 의사를 위한 집을 짓는데 온 정성을 다 기울이고 있었다. 작년엔 카투만두 시내의 호텔에서 쌍쿠 병원까지 매일 비포장 도로를 왔다 갔다 하는 고문(?)아닌 고문을 겪었었다. 2층 양옥으로,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유럽풍의 guest house는 1인1실 혹은 2인 1실의 4개의 방과 2개의 넓은 샤워실, 그리고 중간에 위치한 식당으로 2주간의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작년에는 상주하는 의사없이 독일인 사무직원과 네팔 간호사들만 있다가 올 해 초부터는 독일 쾰른대학 악안면외과 주임 교수로 퇴임한 Dr.Pape가 1년 계약으로 거주하면서 병원의 운영체계가 많이 잡혀가고 있었으며, 작년과는 달리 Dr.Pape가 미리 10일간의 수술 일정을 짜 놓았으며, 신환중 수술할 환자들을 스케쥴 사이에 넣어 매우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Dr.Pape 부부를 대하면서 독일 굴지의 대학에서 주임교수로 은퇴한 노교수가 비록 1년간이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오지에서 자기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위해 묵묵히 불편한 생활을 감래하는 노년의 여유로움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나의 미래를 한번 꿈꾸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에는 주로 언청이 수술을 위주로 하였으나 올 해는 화상 후 수부 및 상지의 심한 변형과 선천성 수부 기형을 중심으로 수술을 시행하였다. 필자가 수부외과와 미세재건 수술 그리고 화상을 주 전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작년에 만났던 많은 화상 후 구축 환자들이 귀국 후에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투만두는 고도 1300m에 위치한 분지로 우기가 지나고 건기가 되면 낮엔 섭씨 30도 가까이 오르고, 새벽이나 밤엔 10도이하로 떨어져 일교차가 심하지만 중급 호텔에도 난방 시설은 전혀 되어있지 않다. 당연히 난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일반 주택에서는 집이나 방가운데 화로나 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우다가 화상을 입는 경우가 허다하고, 적절하게 화상을 치료할 곳이 없으므로 심한 구축 환자가 많아지게 된다.


우리들은 환자와 수술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언제든지 수술이 가능한 '이동수술팀'으로 필자를 단장으로 성형외과 3년차 전공의 강무석, 마취과 전공의 김종균, 의과해학 3학년 학생 양희석 및 수술실 이정숙 간호사 등 5명으로 구성되었다. 수술전 검사를 전혀 하지 않고 전신 마취하에 수술을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병원이라면 모든 검사를 다하고도 혈액응고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수술이 취소되거나 지연될 판이지만 심장과 폐의 청진과 결막을 한번 보고 수술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마취할 김선생이나 수술할 필자의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였다. 화상 후 수부의 심한 구축이 있었던 한 젊은 남자환자는 수술을 못 받을까 걱정되어 병력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 안하다가 수술할 날 새벽에 전신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하루에도 서너차례씩 발작을 일으키는 심한 간질을 앓고 있었으며, 다행히 새벽의 경련으로 수술은 취소되어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소아든 성인이든 아무 불평없이 20차례 이상의 전신마취를 해 준 김선생에게 다시 한번 지면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또한 외래환자 면담과 수술보조, 드레싱, 수술 후 처치 또는 제2집도의로서 모든 역할을 감당한 성형외과 수석 전공의 강선생의 역할도 중요했으며, 또한 요리사(?)로서, 순환간호사(circulating nurse)와 오더리(orderly)의 역할, 그리고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담당했던 의과대학생 양희석군의 역할도 대단하였다. 또한 묵묵히 수술전 수술 후 기계소독과 수술을 도와준 이정숙 수술간호사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렇듯 단원 5명 모두가 일의 구분없이 서로를 도와야하므로 누구 하나라도 탈이 나면 팀웍이 깨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마실 물과 공기가 좋지 못한 이 곳에서 단장의 가장 큰 임무는 단원들의 건강관리였다.


일정이 다 마쳐갈때 쯤이다. 한 네팔기자가 서부 외지에서 만난 15세된 여자환자를 데리고 왔다 .그는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를 간호할 고등학생인 딸까지 동행하였다. 우여곡절끝에 3일만에 도착한 이 환자는 우측눈부터 뺨, 입, 목부위까지 화상 후 심한 구축으로 목을 똑바로 펼 수가 없었는데 과연 어떻게 여태껏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수혈도 필요할 것 같고, 마취를 위한 삽관도 힘들여 보였으며, 전신건강상태도 그리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환자를 본 모든 단원들은 이 환자를 위해 반드시 뭔가를 해주어야 하겠다고 의견일치가 되었고, 특히 마취를 할 김종균 선생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수술일정 마지막 날이지만 Dr.Pape와 함께 수술을 하였다. 우리 병원이었다면 물론 수술 현미경을 이용한 유리 피판수술을 시행했겠지만 이것 저것 따질 환경이 아니므로 심한 구축 피부는 Z-성형술로 턱 부위를 덮고, 목 부위는 대흉근 상부의 Bakamjian 피판으로 덮었으며, 공여부는 피부 이식술로 재피복하였다.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기 소작기로 철저히 지혈을 하였고, 수술 전날 창고에서 발견한 한 병의 덱스트란 용액은 발에 확보한 정맥으로 주입하여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이차적으로 눈과 입에 수술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목을 바로 펴고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봉사활동의 바쁜 수술일정을 마치고 카투만두에서 비행기로 4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포카라로 1박2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신이 창조한 최고의 걸작품이라고나 할까? 수없이 많은 하얀 뭉게구름을 발아래에 도열시키고 그 위에 하늘로 우뚝 솟은 순백의 히말라야!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광경은 동서로 길게 뻗은 희말라야의 사열을 받는 듯하다. 비행고도 보다 더 높아 보이는 이름 모를 희말라야의 정상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위대함에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였다.


네팔에는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파견된 2명의 의사 외에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의학교육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손건영 교수는 경북의대생화학 교실에 재직하다가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이 나라로 이사를 왔다. 아직은 학기중이라 정식 수업대신에 트리부반 대학 생화학 교실의 스텝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는 중이다.비록 수도물로 손을 한번 씻으려고 해도 정수기로 2번 거른 다음 생수물로 한번 더 씻어야 하는 불편한 생활이지만 선교 헌금과 여러 사람들의 후원금으로 너무나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다. 전공 분야의 연구와 자기 발전을 제쳐놓고 오지에서 만족스럽게 생활하는 손교수의 신앙심과 의지에 과연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과 부러움이 들었다.


이젠 의사가 환자를 찾아다녀야 하는 냉정한 우리의 현실에서 한번쯤은 일상의 굴레와 속박을 훌훌 털어버리고 간절하게 의사의 손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이다. 이 나라 곳곳에는 선진각국이 경쟁이나 하듯 앞다퉈 병원을 지어놓고 협력의사를 파견하고 있다.


치료비는 물론 병원의 경영에 필요한 소모품과 의사를 비롯한 모든 네팔직원의 월급도 선진각구에서 부담하고 있다. 국내에는 수련과정을 마치고 국가가 인정한 수많은 전문의들이 공중 보건의로서 감기약을 처방하면서 비효율적으로 젊음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겨우 1년에 3~4명의 일반외과 전문의가 나올 정도니 전세계적으로 전문의사의 편중화현상은 앞으로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올 해에도 우리 봉사팀의 방문에 저녁식사로 따뜻한 환대를 해주신 네팔주재 한국대사관의 황부홍대사님과 노재영서기관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번 봉사활동에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을 주신 의료원장님과 학장님, 병원관계자, 성형외과 주임교수님, 영남의대 동창회, 영성회회원 및 대구달성 고등학교 동문회에 지면으로 나마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또한 비록 국내 사정도 어렵지만 우리 팀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와 주신 국제로타리 3700지구(서대문 로타리) 임창곤 직전총재께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하며, 향후에도 끊이지 않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이 가능하도록 조직적인 협력을 부탁드리고, 이러한 활동들이 더 많은 병원에서, 더 많은 나라의 환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