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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醫窓] 화상, 영원한 마음의 흉터
관리자 | 1996-09-24 00:00:00 | Hit : 49,720

지난 주말, 초등학교 일 학년인 딸의 손에 이끌려 월트디즈니의 「노틀담의 꼽추」를 보러 극장엘 갔다.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라서 오래 전 「안소니퀸」주연의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보았으나, 비록 사람들이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그 감동은 여전하였다. 과거에 느꼈던 단순한 감동에다 지금은 성형외과 의사의 관점에서 생겨난 또 하나의 감동이 더해졌다고나 할까?

항상 대하는 환자들의 가장 많은 문제들이 바로 선천성 기형이나 외상, 특히 화상으로 인한 추형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6개인 다지증이나 귀 모양이 약간 이상한 정도부터 심하게는 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진 구개열과 구개파열, 완전히 귀가 없다든지 한 손이 없는 기형까지 매우 다양하고도 복잡하다. 수술장비의 발달과 함께 성형수술술기의 놀라운 발전으로 이러한 선천성 기형에 대한 수술의 결과는 꽤 만족스러운 수중까지 올라와 있다.

불행하게도 선천성 기형이 아닌 외상으로 인한 추형이나 기형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산업 현장에서 손가락이 절단된다든지 교통사고로 얼굴에 많은 흉터가 남는 등의 문제들이 발생하지만 발가락은 이용하여 손가락 재건 수술을 하든지 혹은 얼굴에 반흔 제거술을 여러 차례 한다면 이러한 문제들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성형외과 의사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바로 화상에 의한 흉터이다.

작년 이맘때쯤, 석달여 동안 애를 먹이던 전신 화상 환자가 퇴원하였다. 상주에서도 버스로 한 시간이나 들어가는 시골에 살던 16살의 중학생이었던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의 꾀임으로 방에서 부탄가스를 흡입하다가 담뱃불에 가스가 폭발하여 전신화상을 입은 것이다.

아무도 이 환자가 살아서 퇴원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수차례의 심폐기능 정지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4번의 피부 이식술을 시행 받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퇴원의 날을 맞은 것이었다. 그러나, 눈, 코, 입, 귀, 얼굴 어느 한 부분이 성한 곳이 없었고, 온 몸은 역시 피부 이식을 받은 부위의 흉터와 피부를 채취한 부위의 흉터로 완전히 도배(?)를 한 것이다.

손목은 앞으로 젖혀지고, 손가락과 손바닥을 연결하는 관절은 뒤로 굽어 손가락도 제대로 쥐기 힘든 상태였다. 퇴원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로서 이런 상태로 인생을 살도록 한 것이 잘한 것인지, 혹은 단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초적인 의사의 본능인지 아니면 자만인지 온갖 회의를 다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많이 남은 젊은 환자에게 주치의로서, 기독교 신자로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손의 구축과 반흔제거술을 두차례 받고 어느 정도의 손의 기능을 회복한 환자에게 필자는 컴퓨터를 배우라고 권유하였다. 약간은 힘들지만 키보드를 칠 수 있게 되어 혼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다룰 수도 있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 어느 곳의 정보도 방안에서 얻을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착하고 밝은 마음을 가진 터라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으면서 적응을 하게 되었다. 이젠 모자를 눌러 쓰고 새로 만든 귀에 마스크를 걸 수 있게 되어 마을에도 돌아다니고 아버지 혼자서 짓는 농사일도 도와주게 되었다.

노틀담 성당의 종탑에 갇혀 살던 곱추는 보기 흉한 얼굴과 기형을 가졌지만 집시여인을 사랑하는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가졌기에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화상으로 인한 흉터나 기형, 아마 이것도 서로의 마음을 열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이들도 지역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믿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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