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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약보] 이보다 더 큰 희망이 또 있을까?
관리자 | 2006-03-01 00:00:00 | Hit : 40,521

1mm 혈관의 희망
이보다 더 큰 희망이 또 있을까?
 

응급수술로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주말에 수술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경우에는 결혼한 지 20년이 가까워 오는 요즘도 가끔씩 집사람의 불평은 시작된다. '성형외과 의사'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속았다는 것이다.
의과대학 졸업 후 힘들었던 인턴 시절, 나는 그 당시 드물게 볼 수 있었던 미세 현미경 수술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몸에서 분리되어 일시적으로 생명이 없던 조직이 지름이 1mm도 되지 않는 가는 혈관을 연결하여, 그곳을 통하여 혈류가 다시 통하면서 새롭게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을 보면서 짜릿한 전율을 느꼈었다. 그 현미경 속에는 새로운 신비의 세계.역동적인 생명의 세계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은 내게 의사로서 한번 인생을 걸어 볼 만한 멋있는 일로 각인되었다. 그렇지만 그 일이 당시에는 얼마나 힘이 들고 스트레스가 심한 일인지, 혹은 의료계의 '3D' 직종에 속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미세 수술은 넓은 의미에서 지름이 5mm 정도의 혈관을 수술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1mm 미만의 가는 혈관을 수술 현미경 하에서,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실과 바늘로 혈관을 꿰매서 피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분리된 조직, 예를 들어 절단된 여러 가지 종류의 뼈.신경.인대.피부 등의 조직이 있다면 다른 조직들을 아무리 잘 연결해도, 혈관을 통해 혈류가 통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도 '모든 생명의 근원은 혈에 있다'고 하는 듯하다.
가장 흔하게 시행하는 미세 수술은 산업 현장에서 손과 발 심지어 팔다리가 절단되었을 때 원래의 기능을 복원시키기 위해 원래의 위치에다 다시 붙이는 재접합 수술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손가락 끝부분이 절단되는 경우에도 0.5mm 정도의 아주 가는 혈관의 봉합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손가락이 없는 경우에는 미세 수술을 이용하여 발가락을 손으로 옮기는 수술도 많이 시도되고 있다. 그리고 암 수술이나 교통사고.선천성 기형 등으로 팔이나 다리에 심각한 조직의 결손이 발생하여 절단해야 될 경우에도 미세 수술을 이용한다.
즉 자기 몸의 다른 근육과 뼈를 옮겨 절단으로 인한 신체의 불구를 예방하고 다시 재건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술의 성공은 단순히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의미 이상으로 환자로 하여금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것을 나는 '1mm혈관의 희망'이라 표현하고 싶다.
의학의 미래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 경솔하지만 굳이 크게 나누자면, 첫째 지금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배아 세포 복제를 통해 필요한 조직을 배양하여 인류의 난치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이고, 두 번째는 뇌사자의 조직이나 기관을 적절한 면역치료 하에 미세 수술을 이용하여 곧바로 재건하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여자와 결혼한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가 주연했던 라는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의 얼굴을 수술로 서로 바꾸어, 그 주인공들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어지게 된다는 내용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물론 이 수술 역시 미세 수술이 기본이 된다.
작년에 발표된 이식수술과 미세 재건 분야의 실험 논문에서는 공상 영화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조금씩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미세 수술로써 흰쥐와 검은 쥐의 얼굴을 분리하고 서로에게 이식하여 얼굴을 바꾸는 것이 성공한 것이다. 최근 프랑스의 Dr.Dubernad는 인륜이나 윤리 문제를 뒤로한 채, 안면부 화상이 심한 여자 환자에게 안면부 재건을 위하여 뇌사자의 안면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거부 반응을 조절하고 치료할 약제의 발전도 필요하지만, 몸에서 분리된 조직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1m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동맥과 정맥 혈관을 연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1950년대에 첫 콩팥 이식 수술이 성공하여 노벨상을 받은 사건에 견줄 만한 의료계의 큰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벌써 몇몇 다른 나라에서는 팔이 없는 환자에게 뇌사자의 팔을 기증받아 팔 이식술을 시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학 수준으로 볼 때, 팔이 없는 장애자에게 뇌사자의 팔을 이식할 시기가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수부 재건 분야와 미세 재건 수술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반드시 해 보고 싶은 의미 있는 수술이라 여겨진다.
미세 재건 수술은 수술이 실패할 경우, 옮기려던 조직만 희생되어 참혹한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에 수술 전에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도 수술 성공률에 대한 부담감은 심각하다. 또한 대부분 6~8시간, 가끔은 그 이상도 걸리는 수술이라 장시간의 마취로 인해 환자의 전신 상태를 어떻게 잘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시행착오 끝에 현재는 일반적인 유리 피판술에 의한 조직 전이술에 97 ~ 98% 이상의 수술 성공률을 유지하고 있어 '1mm 혈관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어려움들은 이제 많이 줄어들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차가운 수술대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집도의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장시간의 수술을 잘 견디고 회복해 준 환자에게 감사의 마음이 먼저 생기고, "참 잘 견디셨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 수술이 잘 되었습니다"라고 인사를 전할 때면, 어깨를 짓눌렀던 수술의 스트레스는 모두 날아가 버리게 된다. 또한 절단이나 신체 조직 결손으로 인한 미용적 훼손을 예방하고 기능 장애를 재건한다면, '환자에게 이보다 더 큰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가슴 뿌듯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