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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부외과센터에서 쓰는 편지 [2002. 12. 04]
w병원 | 2008-12-23 00:00:00 | Hit : 41,321
독일 수부외과센터에서 쓰는 편지

바드 노이스다트 수부외과 병원(Bad Neustadt Hand Center of Rheon Clinics)은 바이에른 주에 위치하고 있는데, 가까운 큰 도시로는 Wurtzburg가 기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고, Frankfurt 공항에서는 차로 약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이다. 이번이 두 번째로 1997년 봄에 3주 정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독일하면 게르만 민족, 비밀경찰, 히틀러 등 별로 친근하지 못하고 약간은 무서운 인상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 이 사람들에게서 처음 느꼈던 것은 서양 양반(?)같은 인상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고, 가볍지 않으면서 신중하고, 예의 바른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지난 봄,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아시아-태평양 수부외과학회에 이곳의 chief인 Uich Lanz교수를 초청하여 좋은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1년에 약 6,000예 이상, 평균 하루 20개 이상의 손과 팔 수술만을 전문으로 하는 가히, 독일 최고의 손 수술 전문 병원이다. 1997년에는 두 사람의 Professor가 독립적인 2개의 수부외과를 이끌다가 Lanz교수로 두과가 통합되면서 더 많은 환자를 보고 있다. Lanz 교수를 중심으로 한명의 P.D 의사 (Professor 직전의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교수 자격이 있는 의사), 2명의 책임의사(overartz)등 모두 7명의 staff들이 수련의들과 함께 진료에 임하고 있다. 완전한 교수 중심의 체제로 아침 7시 반에는 모든 의사들과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이 조회를 하듯 넓은 복도에서 지난 밤의 응급수술에 대한 보고를 Lanz교수에게 하고 회진을 시작한다.

화요일 아침 6시 45분에는 조찬모임으로 구성원들의 학회 참석 여부를 결정하거나, 사소한 과의 문제 혹은 수술 전 집담회로 시간을 보내고, 목요일 오후에는 초청 강사의 presentation으로 심포지엄을 한다. 우리로 말하자면 청송쯤 되는 외진 곳에 큰 병원과 호텔을 지어 독일 전역과 유럽공동체 출범으로 이미 하나의 나라가 된 인접 유럽 국가의 환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무제한 속도의 아우토반이나 헬기로 후송되는 손이나 팔 절단 환자도 있지만, 특히 필자가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인 손목의 관절이나 뼈 수술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아 새로이 공부할 것이 많았다. 병원에서 제공해 준 깨끗한 일인용 아파트는 혼자 공부하고, 씻고 자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러나 원래 빵을 무척 좋아하지만 딱딱한 독일 빵과 감자로 하루 세끼를 다 해결하는 것과 너무 외진 곳이라 저녁 식사시간이라도 놓치면 인적이 드물어 외출이 힘든 불편함도 있었다.

첫날부터 관심 있는 수술에는 scrub하면서 참여하여 우리가 흔히 못 접했던 문제들에 대한 경험을 넓힐 수 있었다. 물론 미국의 클라이넛 수부 및 미세 전문병원(Kleinert's Hand and Microsurgery Center)에서 1년간의 clinical fellowship을 하면서 느낀 것도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임상 예가 적었던 distal radius corrective osteoromy, scaphoid non-union, acute scaphoid fracture, proximal row carpectomy, midcarpal fusion 등 다양한 종류의 손목 뼈 수술을 하루에 다 볼 수 있는 날도 있었다. 좋은 수술 장비들로 비록 뼈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지만 물 흐르듯 진행되는 빠른 수술들이 거칠지 않고 정교하였다. 아마도 DRG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술실 내에 환자가 있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고, 앞 수술의 끝과 다음 수술의 시작 사이에 소요되는 시간이 10분 이내였다.

이미 미세수술에 대한 필자의 경험을 아는터라 도착 첫 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필자의 presentation 시간으로 잡아 놓았다. 이 곳의 가장 취약한 분야가 바로 미세수술이기 때문이다. 'The art of microsurgical hand reconstruction', 'Toe-to-thumb transfer', 'Free functioning muscle transfer', 'Vascularized joint transfer' 등 모두 미세수술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한번은 점심 때쯤 요란한 헬리콥터 소리가 병원 옥사에서 들리더니 지나가던 당직 스텝이 필자에게 손가락 4개가 완전 절단된 응급 환자가 왔는데 오늘밤에 잠은 다 잤다고 투덜거렸다.

일과가 끝나고 숙소에서 논문을 쓰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다가 응급 미세접합수술을 하고 있는 걸 알면서 도저히 방에만 있을 수 없어 밤 10시 쯤 수술실로 갔다. 한 개는 이미 절단 수술을 했고, 다른 두 개는 혈관을 연결했는데 제대로 통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절단된 손가락의 혈관 근위부로 박리가 덜되어 있었고 혈관 문합 상태도 별로 좋아 보이질 않았다. 필자가 한번 다시 시도 해봐도 될는지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yes하면서 반겼다. 다행히 새로 연결한 혈관은 문제가 없었고,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던 그였지만 새벽3시쯤 수술을 마치고 식어 빠진 피자를 같이 먹으면서 이제 앞으로 우리 서로 first name을 부르자면서 조금은 듣기 이상한 '상''상'하면서 필자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음날, 보는 사람들마다 수고했다면서 인사를 건네는데 지금껏 많은 visiting doctor들이 있었지만 밤늦게 응급수술을 할 때 나와서 도와준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면서 고마워 하였다.

간단치 않던 사정들과 갑작스러운 여건의 변화로 이전에 계획했던 미국행도 포기하고, 정들었던 대학도 지난 9월말로 사직하고, 10월 1일부터 이곳에서 지금은 나만을 위한 '안식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보고 싶고, 하고 싶었던 분야의 공부를 하면서, 여러 가지 핑계로 밀렸던 논문도 아무 방해 없이 마음대로 쓰고, 또 이곳 사람들의 힘을 빌려 기존에 출판되었던 한글 논문을 영어 논문으로 새로 쓰면서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많은 불혹의 나이를 넘긴 시기에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게 너무 이기적이기에 여기서 보내는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노랗고 붉게 깊어 가는 가을 때문인지, 아니면 산중턱에 위치한 이 곳 병원에서 내려다보는 전형적인 유럽의 시골마을의 경치가 너무 예뻐서인지, 아님 이제 인생의 후반기로 접어든 나이 때문인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한 그리움은 예전에 외국에서 생활할 때 보다 더 강하게 배어난다.

'한 눈 없는 어머님'처럼 마음 한구석에 항상 밝지 않은 모습으로 차지하고 있는 조국과 대학, 그리고 몸을 담았던 교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어느 집단이든지 구성원들의 희망과 자긍심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고, 이성과 합리로 운영되어지길 기원해 본다. 비록 이 곳 병원의 호텔과 같은 우아한 로비가 아닐지라도, 병실의 침대가 전자동으로 조절되지 않고, 세계 최고의 수술장비는 못 갖추었다 할지라도 내가 맡은 손수술 분야에서만은 우리 환자들에게 최고의 수술 술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공부할 것임을 다짐해본다. 이미 대학을 사직한 상태로 앞으로 어느 곳에서 일을 하는가 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환자들을 얼마나 정성껏 더 잘 보살필 것인가가 중요할 것 같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를 더 가지고 상완신경총 손상과 미세수술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일본과 대만 등지에도 가서 최근 경향을 살피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좀 더 넓히고 싶다.